정혜씨를 아세요? "여자, 정혜"

2021. 4. 14. 23:10Moviee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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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정혜.
벌써 5년 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는데요;; 이 영화 개봉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울산 어디에도 '여자, 정혜'의 포스터가 붙여진 극장은 없었어요.
당시 울산에는 큰 극장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울산이라는 도시가 이정도 밖에 안된다는 씁쓸한 마음가지고, 주말에 시간 내어 부산까지 갔던 기억이 있네요..
그래서 결국 보게 된 영화 '여자, 정혜'

참, 한마디로 요약하기 힘든 영화입니다.
우선, 이 영화는 감성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요.
15세 이상관람가라고 등급은 붙여져 있지만,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19세 이상도 버거울 정도라는게 제 생각.
당시 앞 줄에 앉아있던 여고생 무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망을 감추지 못하던 걸요?
이 영화는 결코 가벼운 영화가 아닌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예요.
자신이 그정도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이 영화는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앞에서 쫑알거리던 고등학생 커플들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나가버리던 기억도 새록새록ㅎㅎ)

이 영화에 초점은 당연히 바로 정혜라는 여자입니다.
다른 것들 신경쓰다간 오히려 지겨워져 버려요.(사실 지루한 감이 없진 않은 영화입니다만;;;)


바로 정혜라는 여자가 이 영화의 시작이자 클라이막스요, 끝이라구요.

 

김지수. 사실, TV드라마에서는 그녀는 그저 청순가련한 또 다른 한 명의 평범한 이쁜 여배우였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어디에서나 청순하고 눈물만 흘리는 그런 배우요. 심심한 배우요. 하지만, 정혜의 모습으로 나온 그녀의 연기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요.
그녀가 이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아!름!다!웠!다! 는 걸 이전에는 알지 못했었어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정혜가 되어버린 그녀는 정혜 자체였습니다.
우체국에서 일하며, 세상에 큰 관심이 없는, 관계에도 별 신경을 안쓰는... 정말 정혜 자체였어요.

김 지수는 이 영화에서 극도로 집중이 필요한 그런 연기까지도 해내었는데요, 이 영화가 겉으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적으로는 감정이 풍부한 연기가 필요한 영화임에도 김지수는 훌륭하게 연기를 해낸 것 같아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영화 중간중간에는 카메라의 시선이 고정된 채 정혜의 표정을 오랫동안 잡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 때마다 카메라는 정혜의 표정을 보여줘요.
장면마다 정혜의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내면 연기란... 아... 정말 김지수는 대단합니다.

(-_- 계속 똑같은 표정이 아니라구요.. 잘 보면 분명 연기를 하고 있단 말이예요;;;)

이 영화는 핸드헬드(hand-held)라는 방식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다고 하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정혜를 쫓아다니면서 그녀의 일상을 아주 사소한 것까지 보여줘요.

그래서 영화로부터 제가 얻게 된 건... 정혜를 미치도록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된 기분.. 이랄까요?;;;;
이 영화는 제가 본 어떤 영화보다더 정혜라는 인물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그녀가 느끼는 것이 제게도 느껴지는 듯하고, 그녀가 보는 것을 제가 볼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라니까요.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정혜의 이야기를 들려줘요.

그녀의 일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녀가 왜 그녀인지를 설명해주며, 가끔씩 그녀의 과거를 보여주어 정혜라는 인물을 우리에게 소개해요.
그녀에겐 이성관계라는 인간관계가 커다란 상처로만 남아있어요.
첫 남자는 그녀에게 상처만을 주었고, 두번째 남자는 그런 그녀의 상처를 들춰내버려요.
이런 정혜가 다시 이성에게 마음을 열기란 하늘의 별 따는 것보다 힘든 일 같아 보여요.

정혜는 항상 자신과의 대화에만 집중을 해요.

그래서 그런지 세상을 대하는 정혜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제가 한 숨이 나올정도예요.(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지겨운 영화로 단정지으시는 듯..)
세상으로부터의 자극, 혹은 관심에 그녀는 항상 무기력한 것만 같아요.
옆집 여자의 신경질적인 말에도, 우체국 소장의 언행에도...
그래서 그런지, 그녀에겐 함께 일하는 우체국 동료들까지도 단순히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대상으로 비춰지는 것 같더라구요.(적어도 제 눈에 말이죠..)

하지만, 정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바꾸고, 그녀의 세상을 바꾸려고 해요.

적어도 그녀에겐 그녀만의 용기가 있었던 거죠.
밖에서 떨고 있는 고양이를 집에 데려다 키우고, 새로운 이성관계를 만들어보려는 작지만 커다란 시도도 해보고, 실연의 슬픔을 가진 한 남자를 위로해주기도 해요.

세상에 무기력한 자신을 책망하듯, 외부의 압박에 저항하기도 해요.
게다가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상처를 남겨준 첫 남자를 칼로 찌르려는 시도까지 해요.

이 렇게 정혜는 무기력하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런 여성이예요.

그런 정혜이기에 첫 남자를 害하려던 칼을 가방에 다시 넣고, 화장실에서 억압된 감정들을 풀어놓으며 울면서도, 다시금 버린 고양이를 찾으러 뛰어올 수 있었을 거거든요.

정 혜는 인간관계에 서툽니다. 특히 이성관계는 서툴기 짝이 없죠.

홈쇼핑에서 광고차 날아온 생일축하카드에 우체국에 자주오는 세 번째 남자(작가)에게 뜬금없이 자기집으로의 초대도 하거든요.

다른 사람이라면 충분히 오해의 여지까지도 있는 이런 초대도 정혜에겐 낯설기만한 서투른 행위일테니까요...

어쩌면 그녀는 자신을 세상 속의 수많은 여자 중의 한 명이 아닌 '정혜'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게 익숙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이 영화의 제목은 '여자, 정혜'입니다. 관객은 모두다 그녀의 이름이 정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영화의 끝자락에 딱 한 번 불립니다.

세상 속에서 '정혜'가 아닌 그저 한 여자에 불과했던 여인의 자기 이름을 찾기 위한 작지만 힘찬 움직임을 나타내려고 그런 걸까요?

영화가 끝나고 casting이 올라갈 때에도, 정혜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인물은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엄마', '우체국 동료', '작가' 등으로만 나오죠.
'정혜'라는 인물의 이름은 영화의 마지막에 자신에게 또 하나의 큰 실망을 안겨준, 그러나 영화 이후에는 그녀를 '정혜'로 여길, 세번째 남자, 작가에게 영화 상영 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되요.

영 화의 전개는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김지수의 연기에 입을 쩍벌린 채 영화를 봤고, 정혜라는 인물에게 푹 빠지게 되어버려서 종반부에는 제 머리속을 점령한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였어요.

이 영화가 페미니즘의 영화다, 마초이즘의 영화다 라고 말이 있더라구요.

페미니즘 마초이즘을 생각할 수준이 안되는 저로서는... 평범하게.. ^-^ 이 영화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영화는 정혜라는 여인을 알기위한 영화이다. 정혜가 느끼는 것을 공감하고,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영화를 감상하는 시작이오, 끝이라구요.

이 영화를 보고나서 전 정혜라는 여자가 어떤 여인일지 생각해보았고, 그녀의 세상을 향한 용기에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으니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생각하는데요...(네.. 혼자만 만족해버렸습니다...ㅋ)

수수한 꽁지머리에 화장도 안한 맨얼굴의 수수한 김지수의 모습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며, 차분한 영화 잘 봤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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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005-03-26 23:04:31 에 제 개인 홈페이지에 등록되었던 영화 감상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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